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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compare and stay positive

#1.
자극이 많이 된다.
배워야 할 것은 끝이 없다.

#2. 
뛰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뛰어난 업적들도 정말 많다.
그러나 어느경우에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길을 가면서 하나하나 느끼는 배우는 즐거움
너무 초조해 지지 않는 것.

예전 내 자리에 써놓은 말이 정말 맞는것 같다.
Don’t compare with others and stay positive.

#3.
동료들이 함께 있어주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Love doing research together.

몇개월이 지났지만 나를 너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 심지어 식당 아주머니까지 나를 알아보고 잘 지내냐고 물어봐주는데 울컥했다. 보고싶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쪼개가며 만나고 있는데, 더욱 즐거운 것은 그동안 생긴 연구질문들에 대해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함께 고민하고 일을 할수 있다는것만큼 행복한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예전 보스로부터 숙제를 받아간다.
도전되고 기대된다.
그립던 풍경, 정겨운 이웃들.
I feel like I’m home.

(Written in Boston, 2018)

Building Psychological Resilience in Academia

(This page was written in Korean)

#1.

오래 기다렸던 논문 사독의 결과가 왔다.

그 결과는 참담한 Reject. 지금까지 보지 못한 최악의 커멘트와 함께.

안그래도 내 스스로의 성과에 대해 조바심을 내고 있던 터에, 오후에 도착한 그 메일은 나의 기분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원래 논문 Reject은 반나절만 슬퍼하라는데, 나에게는 트라우마였다보다. 저녁이 될때까지도 멍한 나의 인지상태와 들쑥날쑥하는 정동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난 말들이 내 뇌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너는 쓸모없는 학자야”

“지금까지는  그냥 운이 좋았을뿐. 이게 너의 진짜 실력이야”

“남들이 이런걸 알면 얼마나 널 우습게 여길까”

교수가 되고 첫 Reject를 당하니 정말 무엇인가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나마 전공의나 펠로우, 포닥시절에는 나를 토닥여주는 교수님들이 있었다. 이제 나를 위로해 줄 사람도 없다.

 

잠깐만.  Red Flag.

이건 분명히 내가 자기비하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 했다.

회복탄력성. 어떤 위기상황이나 트라우마에 빠졌을때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심리적인 원동력. 요새 내가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는 이 개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운동. 충분한 잠. 사회적 지지.

그리고 나를 충분히 응원해 주는 것.

 

#2.

“너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애. 아마 엄격한 부모밑에서 성장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전공의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해준 말이다. 언뜻 반박하고 싶었지만 또 어찌보면 그의 말이 맞는것 같았다. 항상 너무 열심히 사시는 부모님 밑에서, 나는 항상 인정받고 싶었다. 칭찬을 듣고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성적을 내면 주로는 “더 열심히 해서 다음번엔 더 높은 목표를 이루자”는 피드백이 이루어졌다. 점점 더 높은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취했다. 그 뒤에는 항상 내 자신에게 엄격하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던 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계속된 인생의 고비들은 많은 것을 놓아주게 만들었다. 내가 내 자신을 채찍질하기 전에, 일단 위기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는 것부터 다시 배우게 됐다. 누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묵묵히 나의 일을 해나가는 법을 배웠다. 이방인의 땅에서 아무도 나에대해 반응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고개를 들고 나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과정중에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에게 너무나 엄격한 내 자신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떤 비난이나 역경도 이겨낼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힘을 갖게 된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하는 말이 큰 힘이 됐다. 회복탄력성은 결코 혼자만 스스로 쌓아올리는 힘이 아니다.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 많은 요인이 주변으로부터의 사회적 지지에서 나온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알려져 있다.

내가 미국으로 포닥 펠로우쉽을 지원했을때 , 사실 나의 멘토는 그해 펠로우를 더이상 예산 문제로 받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대학 기관에서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의무적으로 지정한 멘토와 면접을 치뤄야 할 때도 그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일반적으론 멘토 한명이 면접을 보지만, 나에 대해서는 멘토와 같이 일하는 시니어 급의 연구자들 몇명에게 따로따로 1:1로 면접을 부탁하였다. 그만큼 나를 뽑는데 신중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후에 그들과 동료로서 일을 할 때, 그중 한명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선재, 너가 나와 면접을 마치고 내가 보스에게 전한말의 요지는 이거였어. 그녀는 강한 의지가 있고 또한 그녀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그것을 꼭 이루는 사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근데 그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면접자도 보스에게 했었대.”

사실 이들은 모두 임상심리사들이다. 임상심리사 동료가 이렇게 말을 해준데에 대해서, 그 이후의 유학생활에서 힘들때가 다가와도 항상 이 말을 기억하며 힘을 내었다.

…..

사실 이 단락의 맨 처음 말도 정신과 의사인 동료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후에 나는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열심히 뒤져가며 평상시 내가 자동적으로 빠졌던 자기비하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사고훈련”을 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도 벽에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방법 10가지”를 붙여두고 내 상태를 점검하곤 한다.

 

#3.

학생들, 특히 박사심사를 앞뒤로 둔 학생들중 몇몇은 나에게 자신의 자존감 문제를 이야기하곤 한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주변의 기라성같은 업적들과 비교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심사를 통과할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더불어  심사에서 이루어지는 비판(critic)을 내면화시키며 힘들어하는 것이 보인다. 실제로 나도 내 박사심사는 너무 힘들었다. 3회의 심사가 있었는데 어느 하나도 좋은말을 들어본게 없었고 모든 비판의 파도안에서 허우적댔었다. 때로는 심한 인격적인 모독인것 같다고 느낄때도 있었다.

마지막 종심을 앞두고 길을 지나는데 차가 내 앞을 지나갔다. 속으로 저 차가 지금이라도 나를 그냥 들이 받았으면 하고 혼자 이야기하던 것을 남편이 듣고 놀라서 문자를 보낸적이 있다.

“아카데미아에 산다는 것은 내 연구가 맞고 내 주장이 옳다라는 것을 고독하지만 끝까지 소리쳐야 하는 길이야. 힘내.”

 

#4.

아카데미아에 산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것 같다. 실제로 출근해서 대부분을 방안에 혼자 앉아서 일을 하고, 점점 더 즐거움은 사람들 사이에서보다 나와 논문, 그리고 나와 책에 써있는 내용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이런 평온함을 깨는 것은 Reject란 한단어. 연구비든 논문이든 Reject란 말이 뜨는 순간 나는 또 자기비하의 늪에 빠진다. 나를 구원해줄 (?) 사람은 없다. 나 스스로 또 Reject mail 앞에 혼자 서있다.

그리고 노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65세까지 평생 그 Reject mail을 보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야해”

괴롭지만, 또다시 나의 회복탄력성을 훈련하는 것.

그리고 나의 아카데미아에서 자존감을 지켜가는 것.

 

아마 평생동안 해야될 숙제인 것 같다.

마치 운동을 평생동안 해야하는 것 같이.

 

 

 

 

 

 

What a life as a post-doc in Harvard has taught me

(This section was written in Korean)

보스톤에 도착한지 일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순수히 한국에서 학부-석사-박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해외에서 포닥을 시작하였다. 삼개월동안 독일 본 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것과 한달간 Johns Hopkins에서 연수했던 것을 빼면, 성인이 되어 해외에서 일 또는 공부(유학)을 하는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에서 가장 높은 funding을 제공했던 Yerby post-doctoral fellowship 이었다. 이 과정에 들어가기까지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했는데,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서 포닥 기간 내내 학교 당국의 까다로운 관리를 견뎌내야했다 (6주마다 본인의 결과 및 진도보고, 개인 프리젠테이션, 펠로우쉽 컨퍼런스 참여, 학생지도 등).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알아채지 못한채, 처음에는 펠로우쉽에 선발되었단 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많이 설레였지만, 또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참 막막한 마음이었다.

아래의 이야기들은, 짧았던 1년 6개월동안 내가 유학하면서 살벌했던(?) 보스톤 지역의 포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내 나름 대로의 팁이었다. 어떤 항목은 타인의 조언에서, 또 다른 항목들은 스스로 부딪혀 깨지면서 터득했던 것들이었다.

  1.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

많은 훌륭한 선배들의 무용담에 따르면, 하루에 3-4시간씩 자고, 교수를 감동시킬정도로 미팅 준비를 하고, 있는 수업을 모두 다 찾아서 듣고, 눈코뜰새없이 일을 해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돌아왔다..등등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때마다 고무되었고 “치열하게 살자”를 핸드폰 바탕화면에 적어놓고 유학가기전 정신수양(?)을 한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나를 고무시켜주시고 자극시켜주실 선배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보기에 엄청나게 워커홀릭이신 교수님 두분께서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지나치게 애쓰지 말것. 삶의 여유를 비워놓을 것.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주변의 미국 사회를 살피고 올 것”

특히, 어떤 한 교수님께서는 너무 열심히 해서 무엇을 이룬다는 마음을 버릴 것을 간곡히 주문하셨다. 나중에 유학을 가서, 삶에 너무 많은 변수가 일어나서 내가 절대로 삶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왜 위의 말을 두 교수님께서 당부하셨는지 조금은 알수 있게 되었다.

  1. 리스트 만들기: burn out에서 나를 막아주는 확실한 방법

이것은 굳이 내가 여기 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하는 일과일 것이다. 단지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매주 월요일 아침 책상앞에 앉아 이번주의 할일의 목록을 세우고, 할일을 조정하는 일이, 나를 끊임없이 일을 해야할것 같은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끝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포닥때는 항상 다급하다. 내가 일을 더해야 하는것 아닌가, 여기서 더 많이 논문을 써야하는것 아닌가, 이사람 저사람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가서 나를 소개해야하는거 아닌가… 그러다 보면 오늘 내가 몇개의 일을 끝내든 항상 남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난 직후까지 일을 해야할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물론 아이와 단둘이 살던 나는, 매일 5시 40분에 프리스쿨에서 아이를 픽업해야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렇게 기약없이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해진 시간안에 리스트에 기록된 일을 끝내야 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점심을 거르거나 일하면서 싸온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리스트에 있는 모든 일들이 지워지는 것을 보고 퇴근을 하면, 집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따로 더 일을 하지 않았다. 뒤에서 이야기 할 내용이지만, 그래서 저녁을 더욱 온전하게 보냈다.

그렇게 집중해서 오늘의 할일들을 리스트에서 지우고 자리를 일어설때면, 내가 오늘 또 무엇을 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이런 긍정적 피드백은 참 중요했는데, 종종 외국인인 내가 문화적인 문제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을 어느정도는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리스트를 세우지 않고,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했다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제대로 모른채 아이가 잠든 이후에 또 “난 지금 무언가를 해야해”라는 막연한 생각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1. 궁금하면 질문할 것, 확실하지 않으면 질문할 것, 모든 발표 후 질문할 것

“I will miss your very smart and thoughtful comments during our group meetings.”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을때, PTSD 전문가 미팅에서 만난 Eric Rimm 교수가 해준 말이다. 이 미팅에서 어쩌면 나는 가장 “낮은” 직급인 포닥이었으며, 들어오는 교수들은 모두 한 분야의 대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미팅이 열릴때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내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수줍어하지 않았다. 모든 미팅에서 가만히 있으면 그냥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소셜이 적은 외국인데, 내가 아는 학술적인 내용을 다룰때만이라도 내 존재가 여기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바보같아 보이는 질문이라도, 질문자체를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참석하는 모든 발표와 미팅, 컨퍼런스에서 질문 하려고 노력했다. 질문도 연습이었다. 몇번을 두고 계속하다보니 “ Great question”이라는 피드백이 자주 왔다.

  1. 중요한 사람에게 자기소개 하기

사람만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나였지만,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자기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를 중요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유명한 연자가 오면 어떻게든 자기소개를 하려고 줄을서는 것을 보면서, 나도 내가 평소에 갖고있었던 질문에 대해 깊게 연구한 사람들이 연자로 올때마다 인사하고 내가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했으며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때때로 그들에게서 아주 핵심적인 피드백이 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코웍등의 실제적 네트워크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그렇게  자기소개를 계속하여 시도하면서, 스스로를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는 능력도 올라갔던 것이다. 시장논리와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이 사회에서, 자기자신의 상품가치를 선전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1. Chat, Chat, Chat: 공부하는 사람들과 수다떨기

내가 유학을 와서 가장 즐거워 했던 점이다. 워낙 자기 자신의 일들에 천착하여 생활하는 이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의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면, 주로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들어볼 수 있었다. 같은 방에 있던 심혈관질환 역학을 하는 친구와는 인과적 추론을 두고 3시간 넘게도 같은자리에서 수다를 떨어본 적이 있는데, 사실 그 시간을 통해서 또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일에 치여서 혼자의 자리에서 일만하는 라이프스타일보다, 일이 잘 안될때 커피 한잔 들고 옆에 있는 친구를 불러내어 이렇게 수다는 떠는 시간들이 내겐 유학생활 통틀어 가장 소중했다.

  1. Plunge into learning English

문제는 영어였다. 학술적 교류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수다를 떨 때 은어나 관용구가 섞이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멋쩍어하던 때가 있었다. 또한 특히 토론을 하면서 일을 할때, 처음에 어휘와 표현을 따라가지 못해 어색해 하던 내가 있었다. 안그래도 미국에서 어떤 정규교육과정도 밟지 못한 나라서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는데, 안되겠다 싶어 처음 6개월동안은 한국방송이나 한글책을 읽지 않고 그 시간에 미국드라마와 책을 보았다. 한국인 친구들보다 미국인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  한번에 영어에 확 빠지는게 영어실력을 늘리는데는 중요한것 같았다.

  1. 분석의 힘은 읽기에서 나온다: 교과서 읽기

논문쓰느라 급급했을지 몰라도, 나는 매달 읽을 교과서를 정해서 읽어나갔다. Causal inference, life-course approach to mental disorders, Textbook of psychiatric epidemiology,  Survival Regression등의 책을 읽었는데,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학문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교과서를 읽으면 지금까지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어있고, 내가 덧붙일수 있는 내용이 어떤 것이 있다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에 좋았다.

  1. 논문쓰기, 코멘트받기, 논문고치기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기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바드 자료로 몇편의 논문을 썼는데, 모든 단계마다 치열한 Peer-review가 있었다. 분석방향을 잡을때부터 모든 공저자들이 의견을 내었고, 또한 모든 공저자가 그렇게 꼼꼼하며 열심히 코멘트를 달았다. 미팅에서도 내 논문의 내용 하나만을 가지고 한시간 반동안 이야기하고, 다시 바꾸고 또바꾸고 다시분석하고를 몇번하여 겨우 완성했다. 내용을 고민할때도, 자가검열이 있었는데, 과연 이 내용이 실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내용인가, 그저 분석에서 우연히 얻은 결과가 아닌가를 두고 고민했다. Authorship에도 누가 어떻게 기여했느지를 정확히 따지고, 아무리 대가라도 기여한바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중간에 이름을 뺐다.

그리고 이 논문들은 지금 각각의 저널들의 리뷰를 받고있다..(fingers crossed!)

  1. Making a Presentation: practice, practice, practice

전부터 느낀거지만 여기의 모든이들이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참 잘한다. 그리고 이것은 발표를 앞두고 몇번이나 연습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지도교수님이 ‘발표하는 비법’이라 발표를 했었는데, 슬라이드는 단 한장이었다. “practice, practice, practice”. 점점 프로페셔널 해질수록(조교수vs. 정교수) 슬라이드의 글이 적어진다며, 툭치면 줄줄줄 나올 수준으로 연습하라는게 핵심이었다.

  1. 당당함, 자기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믿음 vs. 겸손함, 진리에 대한 조심성

여기 학생들의 첫 인상은 아주 당당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서 굉장히 자긍심이 높았으며, 교수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또렷히 전달하는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내 논문을 영어때문에 어느 석사학생에게 전달한적이 있는데, 영어보다 내용을 지적(?)하는 코멘트를 여러개 달아놓았었다. (물론 나는 웃으며 모두  지웠지만)

내 분석결과를 발표해야하는 자리에서, 한국식으로 “겸손히” 말을 했다가 학생들에게 호되게 당한적이 있다. 나의 “겸손한” 표현을, 내 분석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해석하고 돌아가면서 강한 비판을 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지도교수는 내 개인면담에서 “you must be more assertive”라고 주문을 한적이 있다.

여기있는 친구들은 학생때부터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함을 갖도록 요구받는다. 때로는 너무 과도히(?) 자신이 옳다고 하는 어린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점점 나이가 들고 프로페셔널해질수록 겸손함으로 대치되어 가는것 같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자신의 결과에 대한 해석을 할 때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또한 학생들이나 주변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듣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1. 비교하지 말것

하바드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주위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내가 나를 이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면,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었을 것 같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미국내 대학 이후정규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다는데에 대한 결핍감은 컸다. 영어가 원활한 미국인 동료중 어떤 이들은 같은 미국인 동료들에게만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하버드에서 석박사를 하고 포닥이 된 친구들과,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내가 만나있을 때, 한없이 작아보이는 나를 발견한 적도 있다. 이때 나의 고민을 들어준 미국인 동료(하버드 출신)가 해준 말이다.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더라. 비교하지 말 것. 하바드에서 살아남아야 했을때 내가 가장 많이 외운 주문이었어”

  1. Stay positive

누군가 문 앞에 쪽지로 붙여둔 이 말이, 펠로우쉽이 끝나는 순간까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이 되었다. 나는 외국인이고,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같은 미국인 포닥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어주고, 나에게는 구석의 방문도 없는 자리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때 이 “stay positive”란 말은,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말이 아닌, 나의 정신건강과 생존에 꼭 필요한 말이었다. 항상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 내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외국인 차별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였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습관은 연습이 필요했는데, neutral한 상황에 대해서 나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해석을 찾아 실제로 그렇다고 믿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차별과 배제적인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해 했다면, 나의 생활이 아주 힘들어졌을 것 같다.

  1. 30 min walk, be physically active

어떻게든 운동을 해보려고, 아이를 데려다주고 학교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은 걸었다. 걷고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잘 정리되었다. 또한 그날 해야할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누굴 만나야하는지, 새로운 연구아이디어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떠올랐다.  이는 우리 지도교수가 내게 알려준 팁이기도 하다.

  1. Work & life balance: 8-5PM,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요리

나는 미국에 네살난 딸과 단둘이 왔다. 처음으로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하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아이가 있어 내가 타지에서의 힘듦을 이길수 있었구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우리 딸이 있어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매일매일 아이 먹을것을 챙기고 (우리 딸은 한식만 먹는다) 요리를 하게되다보니, 요리를 비롯한 집안 살림에 자신이 붙었다. 아이를 재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는 시간의 고요함이 참 좋았다.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평생 모를 수 있었던 경험이었는데, 이제서야 내가 조금은 온전한 어른이 되가는것 같았다.

  1. 나를 이완시키는 시간

직장에서 각박하게 일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반대로 그 긴장을 풀어줄 시간이 꼭 필요했다. 아이와 “’스트레칭”동영상을 틀어놓고 스트레칭을 하며 꿈나라로 가는데, 그만큼 여기와서 이완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꺠달았다.

Cutter symposium and 166th Cutter lecture of Harvard Chan

(This post was written in Korean)

아침에 출근했더니 내가옆방아저씨라고 부르는 Research Scientist 동료가 나를 챙겨준다. 오늘 있는 강의는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가장 권위있는 강의라고, 꼭 가야한단다. 또 강연이 끝나고 보건대 송년파티까지 함께 가자고 한다. 오후 한시반부터 다섯시까지 연이어 강의하는 빡센 스케줄인데, 연자들 목록이 후덜덜하다.

img_1811 Harvard 보건대 역학과에서 주최하는 Cutter symposium & Lecture. Symposium 은 세번째였지만 Cutter lecture는 1912년부터 시작해서 올해 166회를 맞는 역사를 지닌 강연시리즈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언제나 발랄한 교수님) Lori가 지금까지 강연한 사람중에 얼마나 대가들이 있는지를 짚어줬다. 내가 아는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1913 George C. Whipple: Whipple 수술의 창시자

1919 Alice Hamilton: 직업의학의 선구자

1945 Sir Alexander Fleming:항생제의 아버지

1953 Bradford Hill: 우리가 전문의 시험때 외우던 Causality 기준의 창시자

1961 Archibald L. Cochrane: 코크란 리뷰를 아십니까

1967 Sir Richard Doll: (말이 필요없는) 역학계의 거두. 영국 의사코호트에서 처음으로 담배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밝힘

1977 Sir Peter Medawar: Graft rejection/acquired immune tolerance를 밝힌 이식의학의 선구자

2003 Jeffrey Sachs: [빈곤의 종말]저자

2009 Ming Tsuang: 정신역학의 아버지

2013 Moyses Szklo: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Editor-in-chief

2014 Kenneth Rothman: Modern Epidemiology 저자

2017 Sir David Cox: 콕스모델 창시자

그리고 올해의 연자는

Captur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Editor-in-chief. 사진을 보면 Harvard 도서관 꼭대기층에 있는 NEJM 건물에서 하바드 의대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개괄은 하바드 의대 Armstrong 교수의 철학적인(?) 고찰에서 시작. 왜 우리는 불확실성을 끌어들일수밖에 없으며, 세계의 인식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과학적 성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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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자는 유명한 Women’s Health Initiative  PI인 JoAnn Manson 교수. 내가 쓴 논문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핵심은 HRT는 estrogen only 가 더 harm이 없고 menopause 바로 직후에 시행해야 그 위해가 적다는것. 이를 Clinical trial을 통해 증명해 내는 과정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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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 matters in HRT.img_1824

WHI 와  Nurses’ Health Study의 결과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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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연자는 Alexander Walker  교수. 임상에서 쓰는 진단기준이 역학연구에서 쓰이기엔 힘들며, Clinician과 역학자들이 잘 협의해서 operating  definition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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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적 정의를 할때 여러가지 관점에서  outcome 이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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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복잡한 질병구성이 되어있는 예로 PTSD를 들었다.

“When epidemiologists transfer clinical definitions into epidemiologic studies, they run the risk of measuring shadows”

 


그리고 마지막 연자   Dr. Dra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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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임상시험에서 data 공유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강의했다.  처음에는 임상시험이 발전하게 된 역사를 설명하고, 각각의 phase에 어떤 문제들이 이슈가 되었는지를 간단히 이야기했다. 결론은 이제 임상시험은 시작부터 등록을 해야하고, 결과가 신속히 보고되어야 하며, 그 이후, 모든 자료를 pulbic에 공개해야한다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제도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img_1844 이 할아버지 강의를 몇번 들었는데, 들을때마다 은근히 BMJ를 견제한다. 오늘도 은근히 “BMJ는 그때도 좋은 저널이었….죠?” 라고 말을 흐리는데 관객들이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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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oxetine trial에서 depression의 measurement가 달라서, clinical trial   이후 아주 효능이 있다고 광고한 제약회사가 post-marketing survey에서 실제로 이약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큰 항의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특히 이런 outcome measurement에 정신과 질병의 증상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img_1847Clinical trial 의 발전과 보고체계는 위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img_1851  본격적으로 Clinical trial의 결과 보고와 그 이후 데이터 공개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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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관해서는 최근 NEJM에 지침이 공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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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ical trial data 향후 전체 자료공개에 대해서는 위와같은 수위(?)를 조절하여 해당 저널에 서약?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연구진의 향후 의사를 묻는 것이지, 완전히 자료를 공개한 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항목이 맨 오른쪽의 no access 항목을 표기하게 된다면 저널에서 그 논문을 채택할 확률은 아주 낮을거라고 한다. (협박인것 같다..)


 

전체적으로 Drazen교수의 오늘 렉쳐는 아주 훌륭했다. 한시도 집중을 잃지 않고 몰입해서 들을수 있을정도의 스토리텔링이었다.  또 다른 교수님들의 강연도 훌륭했다. 4시간 가량의 연속된 강의를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들을수 있다는게 신기했고, 역시 대가들은 다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Harvard 보건대에서 가장 큰 강의실인 G1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많이 없었는데 교수님들은 거의 다 왔다. 너무 대가들의 강연이어서 질문이 많이 없었는지 몰라도, Tyler VanderWeele교수님의 쩌렁쩌렁한 질문이 인상에 남았다 (질문은 불확실성의 이해에서 나왔다). JoAnn Manson   교수의 강연에 질문이 없자 Walter Willett 교수가 질문 하나를 던졌는데, 내가 보기엔 오래된 친구?를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청중들은 교수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교실의 맨 뒤에 대부분 앉았는데, Dr. Drazen이 “재미없는 학회에 가면 맨 뒤에 앉는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는 맨 앞에 앉는다. 오늘 좌석배치를 보니, 청중들이 이 강의에 대해 얼마나 기대하는지 알겠다”라고 농담을 던져서 모두가 웃었다. 청중들중 많은 분들이 흰머리 휘날리며 권위를 뽐내는 분들이었는데, 그래도 그분들이 모든 강의에 집중하며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학계의 사람으로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 바로 옆에 앉았던 JoAnn Manson의 그 초롱초롱한 눈매에서, 아직도 그 열정들이 대단하시구나라는 것도 느꼈다.

 

꿈은 크게 갖으라고, 나도 언젠가  Cutter 강의의 연자가 될 날을 소망해본다.

 

 

Farewell

Although it’s a bit early, my boss hosted a gorgeous farewell lunch party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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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 introduced my work with a great slid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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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such a great opportunity to work with this fabulous mentor, Dr. Karesan Koenen. Her advice was keen but very helpful. Also, she was a great supporter of all things. She became an excellent role model as a scholar in psych epi.

She suggested me to take Visiting Scientist position in Harvard Chan after I leave. We will still work together, and this is the most exciting part of my future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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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there was a surprise present from her!

It was a chic lunch box from Kate Spade. My boss is a fashionista; no wonder why she picked this. I felt it like the present from my mother. (Korean moms always worry about meals…)

 

I’ve also got a sweet letter from my colleagues. I’m so proud that I’ve worked with these wonderful people.